Travel/방랑일지

모험가가 꿈이었다.

오주만세 2016. 9. 15. 00:06




말이 통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메뉴를 본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키릴 문자로 된 메뉴들..동구권 국가들을 10달 가까이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키릴 문자는 읽을 수 있지만 그 문자들로 이루어진 단어의 뜻은 전혀 알지 못 한다. 

잠시 골똘히 메뉴를 보며 이해하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피보(맥주)와 보쉬(수프) 뿐..

하는 수 없이 오늘의 식사 운은 하늘에 맡긴 채 적당한 가격 대의 메뉴에서 고른다. 너무 싼 메뉴를 시키면 형편없는 음식이 나올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너무 비싼 음식을 시키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딱 중간 가격 대의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점원의 반응을 본다. 별다른 이상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뚱딴지 같은 걸 시킨 것은 아니구나.

이제 가만히 테이블 앞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릴 뿐....내가 못 먹는 가지나 삶은 당근 같은 것이 나오면 어쩌지...허연 비계 덩어리는 아니겠지...약간은 걱정되지만 한편으론 무척 기대도 된다.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의 음식점에서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메뉴가 없으면 가격에 상관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듯 했지만 이러한 사소한 부분들도 나에게는 여행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모험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고난(?)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어릴 적에 인디아나 존스와 구니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모험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그런 꿈은 희미하게 남아있었고 문득 존스 박사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은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삶은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방랑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즐겁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또는 유명한 장소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유명 관광지를 찾는 건 내 기준으로는 관광에 더 어울리는 것이고 난 (아직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서 고화질 사진을 몇 장 보면 나에겐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10년 전 유럽을 처음 가서 유명한 에펠탑이나 개선문 콜로세움 같은 건물을 봤을 때 그 동안 TV나 다른 사람의 블로그 등에서 보았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는 걸 확인한 뒤의 실망감 때문에 이제는 캄보디아를 가도 중국을 가도 앙코르 와트와 구채구 같은 곳은 굳이 가려고 애쓰지 않았던 이유이다. 해변의 리조트 휴양지는 물론이고..


'세상을 배운다' 라는 말은 조금 진부하지 않은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 예상치 못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 위에서 방랑하고 있다......

그것이 굳이 대단한 장관이나 영화 같은 스펙타클한 경험이 아니라도 좋다.

내 처지에는 이런 시골 마을에서 음식 주문하는 것도 작은 모험 중 하나니까..



참..우크라이나에서 음식점에서 하는 모험은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않다.


2016년 09월 02일 우크라이나의 라히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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