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방랑일지

방콕의 고양이

오주만세 2017. 4. 27. 15:54






보름 후에 있을 친척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러 다시 찾아간 방콕...

 마침 송크란 축제를 맞아 베트남 친구도 방콕으로 왔기 때문에 같이 수쿰빗의 숙소에서 5일간 머물렀다.


건물 내에서는 절대 금연이라는 엄격한 숙소 정책 덕분에 숙소를 나와 길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작은 무언가가 빛나는 눈동자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그 빛나는 눈빛을 마주했더니 아주 작은 내 주먹만한 아기 고양이가 내 움직임을 살피며 경계하고 있었다.


이 곳 태국도 한국 못지 않게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한다. 고양이를 볼 때마다 가까이 다가가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하나같이 걸음아 날 사려라 하며 도망가는 걸 보면 개들의 천국 태국에서 고양이들 대접은 별로 좋지 않은 듯 하다.


이 날 만났던 아기 고양이도 내가 다가가자 급하게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나오라고 손짓을 열심히 하는데도 시큰둥한 것이 영락없는 고양이다.


그렇게 자동차 앞에 쭈구리고 앉아서 혹시나 고양이가 내 쪽으로 오지 않을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불어 온 바람에 길바닥에 버려진 비닐봉지가 차도 쪽으로 날라가고 아기 고양이는 호기심에 그 비닐봉지를 향해 폴짝폴짝 뛰어갔다.


나보다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가 더 마음에 드는건가..생각하며 일어나 차도 한 가운데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는 순간 10미터 정도 거리에서 달려오고 있는 택시 


고양이는 너무 어려서 그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택시 앞바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비닐봉지만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차도 가운데로 뛰어가 택시를 멈추어 세웠다. 놀란 택시 운전사는 급정거를 한 뒤 앞유리창 너머로 나를 신경질적으로 노려 보고 있었지만..나는 택시가 고양이를 깔아뭉게기 바로 직전에 들린 덜커덕 하는 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급정거로 인해 택시에서 난 소리인지...아니면 고양이와 부딛쳐서 나는 소리인지....둔탁한 소리가 났고..앞바퀴 바로 앞에 있던 아기 고양이는 깜짝 놀라 옆집 담을 넘어 황급히 도망갔다. 


혹시 다친 건 아닐까....걱정에 창문을 열고 욕설 같은 걸 내 뱉는 택시 운전사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뒤 고양이가 도망간 집 담으로 다가가 담 너머로 고양이가 살펴보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이틀 후 고양이 카페라는 곳을 갔다.





예쁘게 꾸며진 카페 내부에 페르시안 먼치킨 같은 고급 종의 고양이들이 인간의 장사에 이용 당하느라 고양이 착취 카페라고 할 곳 이었다.

처음에 한 30분은...이렇게 고양이들 데려다 놓고 엄청 비싼 음료 음식값 받는 상술 (일반 카페보다 2~3배는 비싸고 맛도 형편없다..)에 놀라서 '와...나도 한국가서 이런 거나 할까..' 생각했지만..1시간 쯤 카페에 머물며 고양이들을 보니까 여간 불쌍한게 아니다. 영업 시간 내내 구경하고 사진 찍으려 하는 손님들 덕분에 좀처럼 편하게 낮잠을 자거나 쉬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원하지 않는 재롱을 피우고 사진 모델이 되는 걸 보니..


웃겼던 건 1시간 쯤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까 이 고양이 카페 바로 옆에 까칠하게 생긴 길고양이 3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다..

카페 내에서 럭셔리한 고양이들을 실컷 보다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지저분한 길고양이를 보니까 기분이 묘하다...


결국은 같은 고양이인데. 어떤 고양이들은 지나친 사랑을 받고 어떤 고양이들은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한다.


방콕에 이후로 4일간 더 머물렀는데 숙소 옆 담장을 지날 때마다 담 너머로 아기 고양이가 무사히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결국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첫 날 부릉부릉 하며 다가오는 택시의 기척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야생의 본능을 잃어버린 고양이인데..무사히 잘 있는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방콕을 떠났다.


04월 18일 시끌벅적했던 송크란 축제가 끝나 유난히도 조용하던 방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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