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방랑일지

맹인과 함께 밥을 먹다

오주만세 2016. 3. 17. 21:54








이발을 하러 밖으로 나와 인도인들이 바글대는 인도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숙소로 되돌아 가던 중 난데 없이 장대비가 쏟아진다...한 10분만 걸어가면 숙소인데..단 1분도 비 맞으며 걷기 싫을 정도로 내리는 비에 사람들은 모두 건물 안이나 처마 밑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나도 잠시 노점이 펼쳐놓은 파라솔 안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생각해보니 마침 끼니를 떼울 시간도 됐고..엄연히 장사하는 노점에서 자리 차지 하고 있기 뭣해서 의자에 앉아 볶음 누들을 시켰다. 주문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아줌마 한 명이 지팡이를 더듬이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와서 앞에 앉는다. 이 아줌마가 항상 앉던 자리였나보다..

인도 타운 초입인 이 지역은 길거리에 맹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분명 부근에 맹인들 커뮤니티 같은 곳이 있는 게 분명할텐데.

아무튼 내 앞에 앉은 맹인 아줌마는 밥과 국을 시켜 먹을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앞에 내가 앉아 있다는 걸 아는지 내 쪽을 향해 뭐라고 말을 건낸다.. 내리는 빗소리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들린다 해도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계속 웃으며 뭐라 말을 한다... 잠시 후 아줌마가 맹인 아줌마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내가 주문한 볶음 누들도 나왔다.


아 저걸 어떻게 먹을까..? 도와줘야 하나..했지만..손을 더듬어 그릇이 있는 곳을 정확히 찾고..스푼으로 국을 휘저으며 건더기들을 건져 내 밥 위에 놓은 채 능숙하게 먹는다. 

도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내가 다 민망하게....

그러면서도 계속 두 눈을 감은 채 내 쪽을 향해 무언가 말을 건낸다.. 나는 항상 하는 습관대로 알아듣지도 모르면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하는 내내 맹인 아줌마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중국어로 말을 하고...나는 그 아줌마가 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계속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10분...우리 둘 다 식사를 마쳤을 때 다행히 비가 완전히 그쳤고.....


나는 뭐라고 말을 하고 일어서야 할까 고민하다가...일어나서 맹인 아줌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2016년 3월 16일....소나기가 폭우처럼 쏟아졌던 쿠알라룸푸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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